베트남 신도시 건설현장의 열기는 끈적끈적한 여름 날씨 만큼이나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폭 4m의 전통 가옥들을 밀쳐내고 곳곳에 신도시와 고급 주택 단지가 들어서는 호치민과 하노이에는 30년 간극의 과거와 현재가 상존하는 듯했다.
베트남은 지난 2004년부터 10여 차례 방문한 부동산 개발 전문가가 '올 때마다 새롭다'고 할 만큼 빠르게 변모하는 국가다. 그만큼 커다란 성장 기회가 잠재돼 있지만 기회에 가려진 불확실성과 리스크 요인이 적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 전국이 '공사중' = 14일 오후 호치민의 탄손나트(Tan Son Nhat) 국제공항에 도착한 삼일회계 연수팀이 푸미흥 신도시 개발 현장의 탐방을 시작으로 20일 하노이 국제공항을 빠져나올 때까지 전국에는 각종 건설 현장이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호치민 시에 들어선 고급 아파트.
호치민의 노른자위 땅인 1, 3군 중심지와 7군 푸미흥 신도시 개발 지역은 물론이고 노후주택이 밀집한 5~6군 낙후지역에서도 도로를 확장하고 아파트와 상가 건물을 지어올리는 건설노동자의 움직임이 부산했다.
수도 하노이 역시 고속도로와 신도시 건설로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관광지 하롱베이에서는 골프장과 리조트 개발로 경제성장의 초석을 다지고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전세계 부동산 시장 과열에 베트남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속 성장과 실수요 증가를 동반하며 지난 한 해 동안 가격이 두 배 오른 아파트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이 현지 개발업자들의 얘기다.
분양 열기도 뜨겁다. 대만 건설업체인 푸미흥이 주도한 신도시의 한 아파트는 40세대 분양에 2000명이 몰리는 장사진을 연출했다.
거실에서 사이공강이 바라다보이고 외국인학교와 인접, 좋은 입지여건을 갖춘 아파트는 분양을 시작한 지 1주일만에 마감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고급 아파트와 빌라는 임대료가 한 달에 250만~300만원에 달하고, 분양가가 평당 1000만~2000만원에 달하지만 '물건'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소식통의 얘기다. 오피스빌딩 역시 1% 이내의 공실률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부동산 수요의 단면을 드러냈다.
▲호치민 시내에 자리잡은 고급 빌라.
공급이 수요를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자 분양가격이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신발 제조업체 사장이 부동산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 부동산 시장에 쏟아지는 관심이 뜨겁기만 하다.
◇ 건설붐, 어디서 촉발됐나 = 베트남의 뜨거운 부동산 열기는 경제성장 및 소득 증대와 무관하지 않다. 국내의 인구고령화와 상반되는 인구 구성도 부동산 수요를 자극하는데 일조했다.
여기에 지난해 말 베트남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경제적으로 커다란 변혁을 겪을 것으로 점친 외국인 투자자들이 직접 투자를 확대하면서 건설 업계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호치민 중심가의 특급 호텔.
베트남은 지난해 8%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과거 10년 평균 6.5%에 이르는 성장을 나타냈다. 아시아개발은행(ADB)는 베트남이 향후 7~10%의 안정적인 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1억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전체 인구 가운데 30세 이하가 60%를 웃도는 청년 국가라는 점도 부동산과 전반적인 경기 상승을 긍정적으로 전망하게 하는 요인이다.
또 대도시의 1인당 GDP가 2000달러에 불과하지만 경제지표에 잡히지 않는 지하경제가 확대되면서 부동산 수요와 소비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현지 부동산 개발 관계자들은 전했다. 포스코건설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해외동포의 연간 송금액이 60억달러로 원유와 섬유를 중심으로 한 수출액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 뿐 아니라 자동차와 IT 등 각 분야에서 해외 다국적 기업이 진출하면서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아파트가 부족한데다 베트남 신흥 부유층의 고급 주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같은 사정 때문에 수영장과 무인보안시스템, 외국인학교 등 호화로운 부대 시설을 갖춘 신도시와 고급 주택단지가 노후 주택 지역을 잠식하면서 파죽지세로 들어서고 있다.
정책적인 요인도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베트남 정부가 외국 개발업체에 토지를 빌려주면서 보다 많은 자금을 흡수하기 위해 땅값 상승을 유도하는 한편 토지 용도를 엄격하게 규제함에 따라 주택 지역의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황건일 미진글로벌 사장은 "경제 도시인 호치민의 주택보급률이 20%를 겨우 웃도는 수준이어서 임대료가 상승하는 추세"라며 "상가 역시 임대료가 베이징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공급 부족으로 인해 우상향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 국내 업체 진출도 잇따라 = 하노이 시내 중심가에는 대우호텔이 초호화 부대시설과 웅장한 규모를 과시하며 자리를 잡고 있다. 호치민의 대원칸타빌은 국내 기업이 착공에서 분양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최초의 아파트로 기록됐다.
포스코개발은 베트남 철강총공사와 60 대 40 비율의 출자를 통해 호치민 중심가에 주상복합건물 '다이아몬드플라자'를 건설, 베트남 소비 문화를 질적으로 개선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
▲다이아몬드플라자.
다이아몬드플라자의 맞은편에는 금호건설이 호치민시에 2억6000만달러의 자금을 투입, '금호아시아나플라자'를 개발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플라자는 21층의 호텔과 오피스텔, 32층의 아파트(260가구)로 구성되며, 오는 2009년 10월 완공될 전망이다.
하노이에는 포스코건설이 시내 중심가에 29km에 이르는 고속도로 확장 공사를 추진하는 한편 이 대가로 베트남 정부로부터 부지를 받아 2개 신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건설의 신도시는 각각 80만평, 180만평 규모로 주거시설과 교육, 상가 등을 갖추게 된다.
이밖에 경남건설과 GS건설 등 크고 작은 국내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 기회의 땅, 리스크는 없나 =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베트남이 기회의 땅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해외 자본이 밀려들고 있는데다 경제성장과 개발에 대한 정부의 의욕도 강한 만큼 향후 10년을 내다봐도 부동산 시장의 전망이 밝다는 얘기다.
불과 2~3년 전에 비해 회계법인과 법무법인, 투자자문사 등 베트남 진출을 위해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장치가 늘어남에 따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지난 2004년 이익송금제가 폐지됐고 토지사용료 지불 조건 및 투자제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한 베트남 정부의 정책 지원도 강화되는 추세다.
정부의 호혜적인 정책과 함께 베트남 국민의 왕성한 소비 욕구 및 소득 증가도 해외 기업에 매력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하지만 잠재적인 수익 기회가 많은 만큼 리스크도 높다. 국영 기업이 대부분의 노른자위 땅을 보유하고 있는데 부지가격의 적정 가격을 산출하기 어렵고, 법체계가 미비한 점도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호치민 중심가에서는 부지 확보조차 쉽지 않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전했다.
외국인에게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현지 기업과 조인트벤처 설립을 통해 부동산 시장에 진출하고 있지만 파트너 기업과 마찰이 발생해 발목이 잡히는 경우도 많다.
제도적인 리스크 이외에 베트남의 특수성에 따른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일례로 호치민에서 아파트나 상가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국내 업체는 연약 지반으로 인해 기초공사에 예상밖의 비용을 쏟아붓기도 했다.
최종일 삼일회계 이사는 "막연한 기대감이나 투자자문사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1년 이상 발품을 팔면서 사업성을 검토하는 한편 세무와 회계, 법률 등 제반 여건에 대해 면밀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며 "리스크를 최대한 축소한 후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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